그러니까 그는 결국 카페에 갈 운명이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애초에 지금 주머니 속에 든 종이조각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유명호 감독은 어제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손가락 끝에 닿는 그 종이조각을 손바닥으로 꾹 쥐었다. 손안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구겨지면 뭐 어떤가, 서태웅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서태웅은 남의 학교 체육관 문에 제멋대로 홍보물을 붙이는 데도 거리낌이 없는 놈이다.
「응? 서태웅?」
능남고 농구부 주장으로 화려하게 3학년을 보낸 윤대협이 농구부에서 은퇴한 것이 벌써 작년의 일이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까. 이제 적어도 경쟁 학교 에이스가 이쪽 주장 내놓으라며 농구부에 갑자기 쳐들어올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까지는.
그때 서태웅은 능남고 체육관 문 앞에서, 박경태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호전적인 분위기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윤대협도 없는데 서태웅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무언가. 체육관 앞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유 감독을 박경태가 발견하고, 「아, 감독님!」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서ㅌ,」
사실 유 감독은 본인이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걸어야 했다. 키가 큰 놈들은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이 서, 까지 부르다 멈칫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함을 치면 어른의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다. 유 감독은 몇 발짝 더 걸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가까운 거리가 되어서야 「서태웅, 무슨 일이냐?」하고 비로소 물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도 서태웅은 꾸벅 인사만 했다. 그것 또한 살짝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유 감독은 요새 고민이 많았다. 변덕규와 허태환의 은퇴 때는 그래도 윤대협과 황태산을 위시한 2학년 허리가 탄탄했다. 하지만 지금, 이제 그 탄탄했던 녀석들의 은퇴 이후에는…….
와중에 자신이 놓친 물고기가 자신을 멀뚱멀뚱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 저 녀석이 지금 능남 2학년이었으면… 그랬으면 대협이에게서 주장을 물려받았겠지. 그랬으면 올해 능남도 걱정 없었을 것이다. 이뤄질 수 없는 일을 몇 번씩 되새기는 것은 분통만 터지게 한다.
「아니 감독님, 서태웅 선수가 이런 걸 문 앞에 붙여서…!」
서태웅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멀뚱히 서 있자, 박경태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유 감독은 박경태의 검지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 덩치 큰 녀석이 시선을 온통 잡아끌어 눈치채지 못한 어깨 너머로 뭔가 보였다.
「응? 저게 뭐냐?」 「제가 분명히 체육관 문에 함부로 전단지 붙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전단이 아니라 초대장이야.」 「이게 무슨 초대장이야! 감독님, 이게 초대장으로 보이세요?」
유 감독은 어이가 없어 대꾸할 말을 잃었다. 유 감독도 저런 걸 본 적 있다. 하나 있는 딸내미가 어릴 때 영어를 어려워해서, 동네에 붙어있던 영어 과외 전단지의 문어발을 하나 뜯어 연락해 보라고 아내에게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체육관 문에 전단…… 홍보지 붙이는 거 아니다.」 「홍보지가 아니라 초대…」 「에이잇! 초대장이든 초청장이든 남의 학교 체육관 앞에 이게 뭐냐!」